눈치 좀 보게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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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강, 야스쿠니 신사참배, 난민, 공정여행, 소수민족인권, 팔레스타인, 일제고사, 노숙인, 티벳, 평화, 양심적병역 거부 등등. 좋게 말해 ‘다양’, 다르게 말해 ‘산만’한 주제들. 흠~ 문화를 생각한다더니, 대체 너희는 무엇하는 님들이시죠? 완전 다양, 산만, 버라이어티한 ‘문화를 생각하는 사람들(artizen.or.kr)’의 이종수 님을 만났다.


✿ ‘문화를 생각하는 사람들(이하 문생사)’ 창립과정이 궁금해요.

많은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저 역시 평범한 회사원으로 잘 지내려고 했어요. 별 무리 없이 학교 다니고, 졸업하고 사회에 나왔으니 남들 하듯 회사 들어가 열심히 일해야지, 하고 생각했어요. 그러면서도 제 안에는 그렇게 평범하게 사느라 학생운동에 참여하지 못한 것에 대한 부채의식이 있었어요. 솔직히 학생 때는 용기가 없었거든요.

그래서 졸업 후에 뭔가 부채의식을 덜만한 일이 없을까 하다가 제가 민중가요을 워낙 좋아했고, 마침 인권단체에서 일하는 선배와 연결되어 선배의 일을 도와주면서 부채의식을 조금씩 갚아간다고 생각했어요. 비록 양심수를 위한 공연 등의 잔심부름이었지만 참 재미있더라구요. 무대 위에서 보던 인물들을 가까이서 본다는 즐거움도 컸구요.

그러는 와중에 운명의 IMF가 왔고, 회사에서 인원감축을 하게 되면서 저도 그만 둬야 했어요. 공연을 돕는 건 그저 자원봉사였고, 직장은 평생직장이라고 생각하면서 일했는데 그만 둬야 할 처지에 놓이니까 마음이 착잡하고, 인재도 못알아보는 그 회사에 다니기엔 내가 참 아깝다 뭐 그런 생각도 들었죠. 그래서 프리랜서를 하자, 뭐 아직 젊은데 도전해보자 하고 퇴사했어요. 더 늦기 전에 내가 하고 싶은 거를 해야겠다 싶기도 했구요. 그래서 탄생한 게 ‘문화를 생각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게 2004년 11월이었어요.


✿ 결국 혼자서 시작하신 거군요. 결정까지 많은 고민들이 있으셨을 것 같아요. 이름 작명에는 어떤 과정이 있었나요?

단순하게 생각했어요. 너무 운동 성향이 있어도 안 될 것 같고, 그렇다고 예술만을 앞세워서는 일반인들이 접근하기 어려울 것 같아서요. 그래서 무난한 이름을 생각했어요. 그러다 ‘생각한다’고 하면 결정론이 아닌 과정의 느낌이겠다 싶고 또 나 혼자 하지는 말아야지 하면서 ‘들’자를 붙이게 되었죠.

 

✿ ‘문생사’에서 말하는 문화란 한마디로 어떤 건가요?

‘시민사회적 가치를 담은 다양한 장르의 문화’죠. 인권, 생태, 평화, 교육 등을 녹이되 너무 뜨겁지 않게. 서서히.

 

✿ ‘문생사’의 첫 작업은 어떤 것이었나요?

‘문화나눔마당’이란 프로그램으로 관련 분야에서 활동하는 분들 모셔서 강연회도 하고, 영화도 보는 등 자리를 만들었는데, 맨 처음 준비한 것이 ‘모던 포크는 미국산 통기타 음악 - 한국의 통기타음악과 미국의 민속음악’이란 제목의 강연회였어요. 포크라는 음악 장르가 미국 민속음악이면서 저항정신을 담은 것이라 의미가 있겠다 싶었죠. 문화나눔마당의 시작은 사회적 이슈에 함께 고민하고 목소리를 내는데 올바른 방법은 무엇일까? 하는 고민에서 출발된 거예요. 최근에는 4대강 반대 공연, 경술국치현장, '통감관제 터' 표석제막식에 함께 했지요.

 

✿ ‘문생사’에 함께 하는 분들은 얼마나 되시나요?

가장 큰 힘이 되는 분들은 후원회원들로 40-50명 정도 되구요. 운영위원은 있기는 하지만 매월 모임을 갖지는 않아요. 아직까지는 저 혼자 북 치고 장구 치고 다한다고 할 수 있어요. 그러다보니, 요즘은 내가 죽으면 이 일은 없어지겠다 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래서는 안되겠다 라는 생각을 했어요. 함께 하는 사람들을 더 많이 늘리고 자립운영도 가능하고 투명하게 운영되는 건강한 시스템을 만들어야겠다 싶어요.

그래서 후원회원들을 더 적극적으로 모집하려고 해요. 그래서 회원들의 눈치를 보면서 일하고 싶어요. 내가 내는 후원회비가 잘 쓰이는지 알고 싶은 분들에게 1년간 활동 소식을 책자로 만들어서 보내드리고 싶기도 하고, 이런 저런 요구도 듣고 싶고 또 이를 담아내고도 싶고요.

 

✿ 후원회비로 운영은 되세요?

빠듯하죠. 실은 여기 사무실에 오기 전까지는 아는 사람들 사무실에 가서 눈치 보면서 복사하고 그랬어요.

 

✿ 이곳이 성 프란시스 대학이죠? 노숙인들을 위한 인문학 과정을 진행하는 곳이라 알고 있는데 어떻게 오시게 된 건가요?

성공회 임영인 신부님과의 인연으로 오게 되었어요. 3년 전 쯤, 임영인 신부님이 노숙인들을 위한 무료진료소 건립을 위한 후원회원의 밤 준비를 하고 계실 때 였어요. 신부님은 일일주점을 하시려고 했나 봐요. 그런데 일일주점은 수익은 많더라도 끝나면 남는게 없어요. 그래서 이익은 적더라도 오는 사람들에게 의미있는 무언가를 주는 게 좋겠다고 말씀을 드리면서 공연을 제안했어요. 그게 ‘희망, 생명을 노래하다’라는 콘서트였는데, 신부님이 제 의견을 받아들여주셨던 거죠. 행사를 진행하면서 신부님과 친해졌고, 콘서트 이후 사무실을 옮겨야 하는 상황과 겹쳐지면서 이곳에 오게 되었죠.

 

✿ 정말 감사한 일이네요. 공연기획도 하시는 걸로 알고 있는데, 지금까지 하신 공연 중에 가장 인상 깊으셨던 공연이라면?

주로 노래공연이 많죠.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사형제폐지 공연이었는데요, 우연히 신문을 보다가 사형제 폐지에 대한 기사가 있어서 ‘아, 우리나라도 이런 시기가 되었구나’ 싶었어요. 그때가 사형을 집행안한 지 9년차 되는 해였는데, 마침 서울대에서 사형제 폐지 관련 심포지엄을 하더라구요. 그곳에서 자료를 구해보고, 관련 책도 보면서 공부를 했어요. 사형을 집행안한 10년차가 되는 해 즉, 실절적 사형폐지국이 되는 그 다음해 쯤 공연을 해야겠다 마음먹었죠.

사실 사형수가 되는 것도 꽤 어려운 일이에요. 우연히 어떤 사람을 해쳤다고 바로 사형수가 되진 않거든요. 범죄의 방법이 아주 잔혹하거나 연쇄적으로 많은 사람을 해쳤다거나 했을 때 되죠. 하지만 사이코패스가 아니고서야 자연인이 죽여 마땅한 용서받지 못할 자가 되기까지 사회적으로 책임이 있는 기관이나 사람들이 있는데, 그런 건 이야기하지 않고 한 사람을 희생자로 만드는 건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었죠. 또 사형을 시킨다고 범죄 예방 효과가 있는 것도 아니고요. 어찌 보면 단순히 공권력으로 복수를 하자는 것이죠.

여하튼 그래서 이것을 생각해보는 공연을 해야겠다 했고, 그리고 ‘생명평화결사’에 함께 하자고 제안했어요. 이런 일에는 종교인들이 나서야 할 것 같았어요. 다행히 생명평화결사에서도 제 뜻에 동의를 해주셔, 노래도 하고 시낭송도 하면서 즐겁게 진행했어요. 그때 출연해주신 분들이 이원규 시인, 공지영 작가, 조성애 수녀님, 황대권 선생님, 정태춘 선생님, 도종환 시인 등이셨어요.

 

✿ 이런 일들을 하시면서 가장 힘든 점이라면?

경제적으로 어려운 것과 하면 될 것 같은데 잡힐 듯 잡힐 듯 안 되는 것들이죠. 결국 그게 다 제 실력문제인 것 같아요. 부족한 부분이 있어서 그걸 채우고 싶은 열망도 있지만, 정치력도 없고, 문화에 대한 공부도 필요하고요.

 

✿ 그럼에도 하는 이유는?

자기만족. 시민사회적 가치라고 말했지만 제 만족이 가장 큰 것 같아요. 성취감이죠. 한편으론 주변에서 열심히 한다고 칭찬듣는 재미도 있고요.

 

✿ 앞으로의 계획은?

투사나 지사가 되고 싶은 생각은 없구요. 연대하고 싶어요. 주변의 문화예술인 중에는 제가 뭘 한다고 하면 겁난다는 분들도 계셔요. 하지만, 말씀만 그럴 뿐 게스트로 초대하거나 하면 같은 날, 같은 시간 다른 곳에서 돈 많이 주는 공연이 있어도 오시는 경우도 있었어요. 상당히 죄송스런 일이지요. 그런 믿음, 신뢰, 사랑이 바탕된 연대랄까요. 앞으로 제가 능력이 되면, 그런 분들과 함께 올림픽공원 같은 데서 멋진 공연도 해보고 싶어요.

 

✿ 꼭 그런 날이 오길 저도 바라겠습니다.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인터뷰, 정리 : 김옥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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