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의 파란 하늘과 붉은 노을을 생각해 본 적 있는가?

안영민 씨 "팔레스타인에도 사람이 살고 있다"

2011년 04월 11일 (월) 10:15:49

정현진 기자 regina@nahnews.net

 

 

▲ 팔레스타인의 하늘 (사진제공/안영민)

우리는 팔레스타인에 대해 무엇을 상상하는가?

지난 4월 8일, ‘문화를생각하는사람들’이 주최하는 43차 문화나눔마당이 ‘지도 위에서 지워진 이름, 팔레스타인에 물들다’라는 제목으로 열렸다.

팔레스타인 아이가 이스라엘 군인의 총에 맞은 사진을 보고 무작정 팔레스타인으로 날아갔던 안영민 씨. 그는 2006년과 2009년 팔레스타인 사람들과 함께 보낸 일상을 들려주었다. 그는 지구상에서 가장 위험한 곳, 팔레스타인에도 사람이 살고 있으며  “여전히 희망은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고 했다.

 

 

▲ '팔레스타인평화연대', '경계를 넘어' 등의 시민단체에서 활동한 안영민 씨는 어느날, 팔레스타인 아이가 이스라엘 군인의 총에 맞은 사진을 보고, 팔레스타인으로 갔다. 지금은 그들과 함께 살며 보고 들은 것들을 알리는 일에 주력하고 있다. (사진/정현진 기자)


1948년, 한 국가의 탄생

유대민족의 국토 확보를 위한 시오니즘 운동, 그리고 1914년 세계 1차대전으로부터 비롯된 1917년 영국의 벨푸어 선언과 1922년 9월 11일의 팔레스타인 신탁통치 선포는 결국 1948년 5월 14일 이스라엘 건국으로 이어졌다.

1947년부터 시작된 팔레스타인 지역의 아랍인 추방으로 당시 약 75만 명의 난민이 발생했고, 아랍 연합국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이스라엘은 필레스타인 국토의 78%를 차지했다. 이후 팔레스타인은 1987년, 2000년의 인티파다로 저항하며, 70여 년 간의 식민지와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살고 있다. 2000년 9월부터 10년 간 팔레스타인에서는 총 인구 400만 명 중 6,565 명이 사망했고, 이중 25.5%가 어린이와 청소년이다.

통제와 봉쇄, 그리고 죽음의 시간. 그러나 사람이 살고 있다

"우리 마을에 와서 살아봤으니, 한국으로 돌아가면  우리가 테러리스트가 아니라고 꼭 이야기해 줘요."

그들과 한 약속이었다. 팔레스타인에서 보낸 시간들을 카메라에 담고 한국에 온 뒤 안영민 씨는 편향되지도 왜곡되지도 않은, 보고 들은 그대로의 모습을 알리기로 했다. 

 

 

▲ 팔레스타인의 초등학교 아이들. (사진제공/안영민)

 

 

▲ 사진제공/안영민

 

 

▲ 결혼식. 축의금 전달이 특이하다. 신랑의 옷에 옷핀으로 축의금을 꽂아 준다.(사진제공/안영민)


 

 

▲ 팔레스타인 상황에 대해 세계인의 관심을 끌게 된, 1987년 1차 인티파다의 사진.

 

 

▲ 이스라엘에서 라말라로 가는 단 하나의 통로. 철망이 쳐진 정해진 길을 거쳐, 검문소를 통해야 한다. (사진제공/안영민)

 

 

▲ 몇 십미터 밖에 되지 않는 이동거리에서도 몇 번이나 이런 검문소를 거쳐야 한다. 사람 한 명이 간신히 오갈 수 있는 문을 통과하면, 공항을 방불케하는 가방 검색과 몸수색을 받아야 한다. 붉은 불은 예고 없이 하루 종일 켜져 있기도 한다. 그러면 아무도 오갈 수 없다.(사진제공/안영민)


 

 

▲ 이스라엘은 점령 뒤, 건물의 2층을 몰수해 유대인들에게 공급했다. 2층에 사는 이스라엘인들은 아래층으로 쓰레기와 돌 등을 던져, 하늘 위에 철조망을 쳐야 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들만의 통로를 따로 만들었다. (사진제공/안영민)

 

 

▲ 마을임에도 불구하고, 건물 위에는 초소와 군인들이 상주하며 감시한다. (사진제공/안영민)


 

 

▲ 이 농부가 농사 짓던 땅은 이제 철조망 저 너머에 있다. 이스라엘 점령촌 쪽으로는 갈 수 없다. 이 농부의 시선이 닿는 끝에 있던 하천의 물은 점령촌에서 흘려 보낸 폐수로 오염됐다. (사진제공/안영민)

 

 

▲ 거리에서 갑자기 터진 최루탄. 길에는 늘 군인들이 서성인다. 범죄나 사고가 난 것도 아닌데, 갑자기 최루탄이 터졌다. 이유는 단 하나, 괴롭히기 위해서다. (사진제공/안영민)


 

 

▲ 이집트, 이스라엘과 국경을 마주한 가자지구는 해방운동이 가장 강한 곳이다. 활주로는 파괴됐고, 바다에는 군함이 떠 있어 철저하게 봉쇄된 가자지구를 돕기 위해 국제 구호선을 띄웠다. 이스라엘은 이마저 공격해 9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지만 지원 활동을 멈추지 않는다. (사진제공/안영민)


 

 

▲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에게 희망은 있다. (사진제공/안영민)

이스라엘은 2008년 12월 27일부터 22일동안 가자지구를 공격해, 150만 명 인구 중 1,400여 명이 사망했다. 이들은 정부시설, 이슬람 사원, 의료인을 공격했고, 심지어 유엔에서 운영하는 학교에 피신한 사람들에게도 폭격을 가했다. 사용된 무기는 인성분으로 피부를 태우는 폭탄이었다. 

가자지구의 봉쇄로 식량, 전기, 석유, 의약품 등이 부족하다. 지역이 협소한 가자에서는 식량을 자급할 수도 없다. 이들은 이집트와 이스라엘 국경 사이의 틈에 땅굴을 파서 필요한 물품을 조달한다. 천 여개가 넘는 땅굴이 있지만, 수시로 폭격이 가해진다.

팔레스타인의 저항은 끊임없이 진행된다. 물론, 지도층이나 저항세력 간의 내부 갈등도 존재한다. 그러나 스스로 포기하지 않고 의식을 깨우기 위해 노력한다. 여성농민조직을 통해, 교육과 인권활동을 해나가며, 감옥 수감자들을 위한 치유 프로그램, 남겨진 여성과 아이들을 위한 지원 활동을 진행한다.

안영민 씨는 이스라엘 내에도 팔레스타인을 지원하는 사람들이 있으며, 팔레스타인에 대한 총격이 있을 때 맨 몸으로 막아서는 이들도 있다고 전했다. 다만,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에 대해서 적대감을 갖고 몰아내야 할 대상으로 의식하는 것은, 예전의 한국의 남북 관계와 비슷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어서 그는 "몸이 아픈 친구를 걱정하는 아이의 마음"처럼 우리가 팔레스타인을 이해하고 도우려면 "서로의 마음이 만나야 한다"고 관심과 나눔을  당부했다.  

"우리는 양면의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착하고 선량한 마음도 있지만, 고통과 갈등을 회피하고 싶기도 하죠. 그래서 우리는 매 순간 선택을 해야 합니다. 메마른 것 같은 마음 안에도 여전히 따뜻함은 남아 있습니다. 조금만 더 서로를 아끼고 보살필 수 있는, 함께 웃는 세상을 위해서 조그만 일이라도 지금 함께 시작했으면 합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nahnew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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