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수(38) 대표는 참 대책 없는 사람이다. 모두가 새천년을 맞이하는 기쁨으로 들떠있던 1999년 말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백수'가 됐다. IMF 이후 누가 잘릴지 몰라 서로 눈치를 보는 회사 분위기와 자기계발 시간을 허용하지 않는 회사 방침 때문에 내린 결정이었다.

▲ 1999년말 5년간 다니던 직장을 그만 두고 문화운동을 시작한 이종수씨.

ⓒ 김대홍

그는 5년 동안 모은 돈으로 하고 싶은 것을 하겠다고 다짐했다. 소프트웨어 개발업체를 잠시 운영하다가 2002년부터 본격적으로 문화운동에 뛰어들었다. 대학시절부터 꿈꾸던 일이었다. 본인의 표현에 따르면 겁이 많아 매번 집회 언저리만 돌던 그는 앞장선 사람들에 대한 부채의식이 있었다.

문화운동을 시작한 2002년 '이지상 라이브 콘서트' '양심수 김경환 석방을 위한 시와 노래의 밤' '2002 인권콘서트-우리, 숨쉬자'를 기획하고 진행했다. 2003년에는 문화쇼핑몰 디스크포유(www.disc4u.co.kr)를 설립했다. 포크 명곡들과 TV에 얼굴을 내밀지 않고 묵묵히 음악활동을 하는 가수들의 곡만 수집해 판매했다. 당연히 상업성과는 거리가 멀었다.

쇼핑몰을 통해 버는 한달 평균 매출은 70여만 원. 세금을 떼면 그의 손안에 남는 돈은 30~40만원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그는 공연무대를 마련하지 못하는 가수들이 오히려 걱정이라고 말한다.

2005년엔 비영리단체인 '문화를 사랑하는 사람들'(www.artizen.or.kr)을 만들어 다양한 문화강좌를 개최했다. 군개혁을 부르짖어 파란을 일으킨 표명렬 예비역 장성을 비롯, 학교내 종교자유를 외치며 교목직을 던진 대광고 교목 류상태씨,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이 초대됐다.

"정답 말하는 운동은 내 방식 아냐"

"원래 인권운동에 관심이 많았어요. 농민운동이나 통일운동 등 모든 운동이 남을 인정하고 약자를 배려한다는 점에서 다 인권운동이라고 생각해요. 그중에서 저는 문화를 통해서 인권운동을 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이종수씨는 문화운동을 하고 싶다고 결심한 뒤, 홀로 가는 길을 선택했다. 조직원리에 따라 움직이는 것을 체질상 싫어했기 때문이다. 대학 재학시절 사람들이 NL이니 PD니 정파에 따라 움직일 때도 그는 양쪽 사람들과 모두 교류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는 문화운동의 정규군이 되는 대신 게릴라의 길을 선택했다.

어떤 조직의 도움 없이 혼자서 자신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찾아다니고 행사를 만들어낸다. 그 가운데 만난 사람들을 통해 또 다른 세계를 만난다. 대학 시절 자신이 다니던 성당 청소년들을 이끌고 당시 명동성당에서 농성하던 권영길 전 민주노총 위원장을 찾아갔으니 애초부터 게릴라 기질은 다분했던 듯하다.

이씨는 콘서트나 행사를 기획하면서 부르짖지 않는다. 참석한 사람들이 자유롭게 자기만의 방식으로 느끼고 생각하기만을 바란다. 새만금 공사 관련 콘서트를 열었을 때도, '새만금 공사 저지'라는 문구나 주장은 어디에도 없었다. 단지 행사장 로비에 새만금 갯벌에 사는 동식물들 사진을 전시해놓았을 뿐이다. 어떻게 보면 색깔이나 목적이 없는 행사같이 보인다.

"제가 기획하는 행사는 정답을 제시하지 않습니다. 제가 그럴 능력도 없구요. 단 '이것은 안 된다'는 것만 거릅니다. 나머지는 참가한 분들의 몫이죠."

이종수씨는 돈 대신 자유로움을 선택한 사람이다. 그는 자유로움과 다양함 속에 건강이 깃든다고 믿는다. 그래서 국제행사가 열릴 때마다 도로 주변 집들을 철거하거나 새 단장 하는 게 못마땅하다. 제각기 생긴 모양대로 가치가 있는데, 그걸 일방적으로 재단한다고 불만을 토한다(이 말을 할 때 이종수씨가 무척 흥분했다. 자칫 정치 사회 문제로 흐를 것 같아 서둘러 화제를 돌렸다).

문화운동 하는 이유 "안변하기 위해서"

▲ 지난해 이종수씨가 개최한 사회인문화학교의 인권강좌 장면

ⓒ 김대홍

그는 행사를 기획할 때 단 두 가지를 조건으로 내건다. 하나는 내용만큼 형식이 중요하다. 또 하나는 공연장 로비를 메시지로 채워라 라는 것이다. 그중 첫 번째는 좋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폭력이나 계략이 들어가선 안 된다는 뜻이다. 그에게서 소리 낮은 자의 고집이 느껴졌다.

이종수씨가 문화운동에 뛰어든 지 이제 5년째다. "많이 깊어지고 넓어졌겠다"고 물었다. 그는 "그건 아니"라면서 강하게 고개를 흔들었다. 강한 부정의 몸짓이었다. 이어 조심스럽게 "문화운동을 하는 이유는 내가 안변하기 위해서"라고 털어놓았다.

"집회에 참가하거나 신문을 통해서 존경할 만한 사람들을 참 많이 만났어요. 그런데 그 분들이 어느 순간 변하는 것을 보고 많이 실망했습니다. 그러면서 생각했지요. '나는 안 변해야지'라구요. 장준하와 김구가 존경받는 이유도 끝까지 원칙을 지켰기 때문인 것 같아요."

▲ 이씨가 제일 좋아하는 인사말은 두 가지다. “어려 보인다”와 “안 변했다”이다. 그는 빨리 이루기보다 오래 가길 원한다.

ⓒ 김대홍

이씨가 제일 좋아하는 인사말은 두 가지다. "어려 보인다"와 "안 변했다"이다. 서로 다른 듯 보이지만 결국은 같은 말이다. 그는 빨리 이루기보다 오래 가길 원한다. 갑자기 '갈매기 조나단'이란 책 이야기를 꺼냈다. '가장 높이 나는 새가 멀리 본다'는 문장을 뒤집어 '가장 낮게 나는 새가 가장 자세히 본다'로 바꾸었다.

그는 천성적으로 누구 위에 서거나 유명해지고 싶은 마음이 없는 듯 보였다. "명예욕이 없는 것 아니냐"고 묻자 "명예욕 없는 사람이 어디 있냐"면서 "이름 알리고 싶으니까 인터뷰도 하는 것"이라며 활짝 웃었다.

그의 취향이나 철학으로 보아 앞으로도 그가 유명해지긴 힘들 것 같다. 그러나 누구보다 오래, 멀리 갈 것이란 느낌이 들었다.

"저는 문화운동 하면서 100점 맞고 싶은 생각은 없어요. 그러나 0점 맞는 것 또한 싫죠. 그래서 편해요. 100점 맞을 일이 없으니, 끝까지 나아갈 수 있거든요. 이제는 오래갈 자신이 생겼어요."

 

'따로 또 같이'는 자유로움, 소수, 연대를 생각하며 쓰는 연속 기사입니다.


[출처] 오마이뉴스 www.ohmynews.com
[기사원문]
 http://www.ohmynews.com/articleview/article_view.asp?at_code=302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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