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넬 국장이 전하는 줌머인 역사
“소수민족 위한 한국인 관심 要”

신중일 (발행일: 2009/04/20) 

식민지 거쳐 방글라데시까지 핍박
대다수 불자…사원 앞서 학살 자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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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한줌머인연대 로넬 차크마 사무국장


“치타공 산악지대는 줌머인의 문제만이 아닌 국제 사회의 인권을 위한 공통적인 문제입니다. 이를 위해 전 세계에 퍼져있는 줌머인들은 활동하고 있습니다. 줌머인들의 인권 개선을 위해 한국 사회의 관심이 필요합니다.”

재한줌머인연대 로넬 차크마 나니 사무국장(사진, 42)은 4월 15일 ‘문화를 생각하는 사람들’이 인권연대 교육장에서 개최한 31차 문화마당에서 줌머인들의 슬픈 역사와 인권 상황들에 대해 전하며 말문을 열었다.

줌머인은 방글라데시와 인도 국경에 위치한 치타공 산악지대(Chittagong Hill Tracts, 이하 CHT)에 살고 있는 11개 소수 민족이다. 재한줌머인연대는 한국에서 살고 있는 줌머인들의 단체로 현재 50여 명의 회원이 활동 중이다.

로넬 사무국장이 이날 전한 줌머인들의 비극은 애절하기만 하다. 1900년, 영국은 인도를 식민지배하며 치타공 산악지역에 거주하는 소수민족 줌머의 자치를 허용하고 외부인의 정착을 금지했다. 1947년, 인도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하며 인도는 인도와 파키스탄으로 분리되고 줌머는 파키스탄 정부의 관할지역이 됐다.

1957∼1962년, 파키스탄 정부의 치타공 산악지역 수력발전소 건설로 경작 가능한 땅의 40%가 수몰되고 줌머인 10만명이 인도로 강제 이주됐다. 1971년 12월5일, 줌머인들이 방글라데시와 함께 파키스탄에 맞서 독립전쟁을 벌였다. 1971년 12월16일, 방글라데시 정부가 수립되고 줌머 대표단은 줌머의 자치권 등을 요구했으나 방글라데시 정부의 입장은 ‘인종에 대한 정체성을 버리라’는 것이었다.

이후 1973년 줌머인들은 본격적인 자치권 인정에 대한 저항과 투쟁을 시작했다. 방글라데시 정부는 CHT의 저항을 허용하지 않고 이들과 전쟁을 선포하기에 이른다. 군대를 배치하고 체포·고문·강간·살해와 인권 유린을 하며 CHT를 점령한다.

방글라데시 정부의 핍박은 민족뿐만 아니라 종교 문제에서도 기인한다. 줌머인들의 대다수는 전통적으로 불교를 믿고 있다. 반면 방글라데시의 주 민족인 뱅갈리인들은 이슬람을 신봉한다. 이런 이유에서라도 뱅갈리인들은 CHT 점령 과정에서 수많은 사원을 파괴하기도 했다.

실제 마을 전체가 불교를 믿고 있는 카왈리의 경우 방글라데시군이 불교 사원에 주민들을 몰아놓고 총기를 난사해 죽이는 학살이 자행되기도 했다.

로넬 사무국장은 “불자들에게는 가장 중요한 성전에서, 그것도 부처님 전 앞에서 이런 만행이 이뤄졌다”며 “이런 인권 침해 사항은 현재까지 전혀 나아지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1997년 평화협정 체결 이후 상황이 나아진 것처럼 보이지만 내부 사정은 그다지 변화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그나마 나아진 것은 2008년 영국에서 CHT Commission이 재결성돼 방글라데시 현지인들과 연대활동을 펼치고 있다는 점이다.

로넬 사무국장은 강연의 말미 “한국의 시민 사회가 국제 인권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기대만큼 관심을 받지 못하는 소수민족의 인권에도 주목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신중일 기자


[기사출처] 주간불교 http://www.bulkyonews.co.kr/paper/news/view.php?papercode=news&newsno=17354&sectno=1&sectno2=0&pub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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