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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메라와 자전거로 바라 본 도시의 속살>

김대홍(도시의 속살 저자))


‘도시’하면 거대하고 복잡하고 빠른 이미지가 떠오른다. 시골, 농촌은 풀빛 이미지가 강하고 도시는 회색 이미지가 강하다. 또 도시는 떠나고 싶은 곳 같다. 하지만 나는 도시에서 태어났다. 그래서 고향의 이미지가 있다. 도시에서 자랐고 지금도 도시에서 살고 있다.

소년기는 부산에서 보냈다. 친구들과 동네에서 ‘도랑 뛰어넘기’, ‘딱지치기’ 등을 하면서 놀았다. 그 시절 매일 저녁의 즐거움 중의 하나는 책상 서랍속에 가득 채워져 있는 딱지를 보는 것이었다. 한번은 동네친구와 하루 종일 딱지를 치는 왕중왕전을 벌였는데 그날 가지고 있던 딱지를 다 잃었다. 한때 딱지가 가득 채워져있던 빈 서랍을 보며 인생의 허무함(?)을 느꼈다. 그런데 그때 서랍구석에 세워져 있어 미처 발견하지 못한 딱지 하나를 발견했다. 다음날 아침. 6시에 눈을 떠 다시 그 친구와 딱지치기를 하여 이번에는 친구의 딱지를 다 땄다. 그 날 이후로 동네에서 딱지치기가 사라졌다. 동네를 떠나는 날 딱지를 동네친구들에게 다 나누어 주었다. 그 외 도시의 동네에서의 잊혀지지 않는 기억중에 하나는 불량식품이었던 떡볶기를 사먹었던 것이다.

마산에서도 살았는데 그 무렵 시골의 외가로 자주 놀러가기도 했다. 외가에서 하룻밤을 자고 일어나면 모두 일하러 나가 혼자있기 일쑤였는데 빈집에는 소 몇 마리, 한자책만 있었을 뿐이었다. 텔레비전도 없고 정말 놀 것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날 광에 처박혀있던 자전거를 발견했다. 그 자전거로 읍내로 빠져나가 오락도 하고 그랬다. 나에게 있어 시골은 탈출을 의미한다

청소년기에는 향수병에 걸렸다. 큰집이 부산이었는데 제사가 있어 모이면 끝나고 몰래 사라지곤 했다. 그리고 혼자서 예전에 살던 집을 기웃거리고 예전에 먹던 떡볶이를 먹고 구멍가게 가서 아주머니에게 인사드리고 오곤 했다. 마산에 살면서 부산을 그리워하는 향수병에 결렸던 것이다. 지나간 것, 사라진 것에 대한 그리움이리라. 나에게는 여행도 그런 의미였다. 그래서 도시를 여행해보자는 생각을 하게됐다.

도시를 여행한다는게 느낌이 오시는가? 여행이라 하면 일상탈출을 떠올린다. 어디론가 떠난다는 느낌이 있는 것 같다.

Smoke라는 영화에서 주인공 사진가 하비 케이틀은 13년 동안 자기가 살고 있는 도시의 한 곳을 같은 시간에 찍는다. 같은 시간, 같은 장소이니 비슷한 사진이 나올 것 같았는데 나중에 보니 같은 사진이 하나도 없었다. 일상은 늘 새로웠던 것이다.

나에게 여행은 이런 것이다. “떠남” 보다는 “익숙한 것 다시보기”다. 같은 듯 하지만 다른 모습, 새로운 느낌을 갖게 하는 것이다. 삼국지를 10대, 20대, 30대에 읽었을 때 그 느낌이 다르듯이…
 
가장 많은 시간을 살고 있는 서울에는 470여개의 동이있다. 그중 행정동은 430여개이다. 법정동은 고유한 동이름이며(봉천동, 상계동 등) 그것을 쪼개놓은 것이 행정동이다(봉천 1동, 봉천2동 등)

서울에 대장간이 아직 그리고 생각보다 많이 있다는 것을 아는가? 낙원동에는 두명이서 밥과 술을 먹으면 만원을 넘기기가 어려운 곳도 있다. 예전 회사선배들과 네명이서 푸짐하게 먹었는데도 12,000원인 적도 있다. 미안해서 돈을 더 드리고 싶을 정도였다. 청계천에는 1,000원 짜리 쓸만한 물건도 많다. 불과 얼마전 뉴타운 개발붐이 일기전에는 상암동에 일제시대에 지은 판자촌도 있었다.

당제(堂祭)를 지내는 마을이 서른 곳 정도가 있다. 월계동은 유교적 풍습이 남아있어서 남자들만 지내는데 시대의 흐름을 따라 여자도 함께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견과 전통을 따라야 한다는 의견이 양립하고 있다. 점점 서울은 2중 3중으로 자물쇠를 걸어 잠그고 경비를 세우는 도시가 되어 가지만 낙산마을에서는 모두 문을 열고 살고 있었다. 동네주민들 모두 다 알고지내는 사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느낌이었다.

정말 서울은 참 다양한 곳이다. 서울은 일방적으로 이렇다 정의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알았고 도시라는 곳이 반드시 회색빛만 아니라는 것을 알게되었다. 도시의 등기부등본. ‘예전에 어땠을까?’하는 생각에서 출발한 것이 “도시의 속살”이다.

대로(大路)에서는 안보여서 사라졌다고 생각했는데 골목을 돌아다녀보니 보이기 시작한 것이 있다. 바로 “낙서”다. 자동차를 타고다닐 때 안보이던 것이 자전거로 다니고 천천히 다니니 보이기 시작했다. 낙서를 보면 그 시대가 보이기도 한다. 도시의 벽과 담은 간혹 도화지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도시를 볼 때 옆에서 보고 위에서 보고 하면 다르게 느껴진다.

서울을 다니면서 사진을 찍다보니 다른 도시들의 모습, 벽, 길, 사람들을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200여군데 도시를 다녔다. 무작정 다닌 것은 아니다. 순서를 정했고, 이야기가 있는 곳, 드라마틱한(잘나갔가다 그렇지 못했다가 하는) 곳을 찾았고, 뻔한 이야기 아닌 숨겨진 이야기가 있는 곳을 골랐다. 서울을 다녔던 방식 그대로 느리게(걸어서 또는 자전거로) 무작정 가서 부딪혔다. 선입견 없이 보려고 지도도 없이 둘러봤다. 한마디로 좌충우돌 다녔다. 도시를 가면 반드시 오래된 이발소를 들렀고, 구멍가게를 들렀다. 거기는 동네의 이야기가 모이는 곳이었다. 또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놓치기 쉬운 사소한 것들을 가까이서 보았고 천천히 보았다. 서서 보지 않고 쪼그리고 앉아서 보았다. 예기치 않은 상황이 생겨도 그런 상황을 즐겼고 그 지방의 토속음식은 반드시 맛보았다. 앞으로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모을 것이고 한번 간곳이라도 시간이 흐른 후에 또 가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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