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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징용의 역사 “단바망간기념관”

황의중(단바망간기념관재건한국추진위원회 실행위원장)

단바망간기념관을 다시 살리자는 운동이 지금 일본과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윤도현 밴드가 교토에서 자선공연을 하기도 했습니다.

단바망간기념관은 일본에 있는 아주 작은 역사박물관입니다. 평생 단바광산에서 고생하다 진폐증에 걸려 죽음을 앞두고 있던 이정호라는 분이 만들었고 그 아들이 20년간 운영해 왔는데, 연 500만엔의 만성적자를 견디다 못해 결국 작년 폐관되었습니다. 물론 일본 정부는 전혀 도와주지 않고 있습니다.

단바망간기념관에 관한 개략적인 내용은 앞에서 본 영상으로 알 수 있을 겁니다.
저는 크게 두가지, 이 단바망간기념관을 어떻게 우리가 인식하는 것이 좋을까 하는 것과 앞으로의 모금운동을 어떻게 전개할 것인가에 대해 말씀 드리겠습니다. 

처음 시작은 단순한 모금운동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요즘 점점 생각이 깊어집니다. 이 작고 소박한 기념관이 제게는 점점 큰 산처럼 여겨지고, 또 이 모금운동을 통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이 점점 크게 느껴집니다.

먼저 저는 이정호씨의 심정을 느껴 보고, 같은 입장이 돼보려고 노력했습니다.
왜 이런 것을 만들려고 했을까?
첫 번째 든 생각은 누구나 생각하는 아쉬움. 평생을 고생만 하다가 병을 얻어 죽어갈 때 느끼는 어떤 아쉬움, 자신의 삶에 대한 아쉬움에서 비롯되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그런데 보통 사람이라면 이런 경우 자서전을 썼을 텐데, 이정호씨는 광산 자체를 재현하는 어려운 작업을 선택합니다.

망간광산을 사람들이 견학할 수 있을 크기로 굴을 넓게 파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망간은 단단한 광물입니다. 쇳덩어리와 부딪히면 쇳덩이리가 닳을 정도입니다. 그래서 원래 망간 광산은 두더쥐 굴처럼 사람이 겨우 기어 들어갈 정도로 좁게 팠습니다. 물론 다이나마이트를 쓰기도 하지만 낙반사고의 위험으로 사용할 수 없는 곳도 많아, 총 4.5km의 현장박물관을 만들며 어느 기간엔 하루에 20cm정도뿐이 넓히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만큼 힘든 작업입니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연민
그런데도 그가 결단을 내린 것은 아마 자신만의 삶이 아니라 함께 끌려와 고생했던 사람들의 얼굴들을 떠올렸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강제징용으로 젊은 나이에 끌려와 일하며 고향생각에 눈물짓던 얼굴들, 함께 막걸리를 나눠 마시던 얼굴들. 진폐증에 걸려 조국에 돌아가지도 못한 채 하나 둘 씩 죽어가는 사람들. 지금 어디에서 무얼 하고 있을지 모를 이들의 삶과 이야기가 이대로 사라져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했을 것 같습니다. 즉, 자신만이 아닌 같이 고생한 조선인들, 약자에 대한 연민, 어쩌면 정의감 같은 것이 작용했을 것입니다. 내가 해야겠다고. 인간에 대한 사랑이고 정의감입니다.

저는 “강제징용”이라는 역사를 내세우기보다 오히려 이정호라는 사람, 한 인간에 포인트를 두면서 이 운동을 전개하고 싶습니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동정, 연민, 사랑이라는 보편적 차원에서 접근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망간기념관에 갔을 때 우연히 견학 온 일본인 교사를 만났는데 그는 ‘강제징용이라는 역사적 사실 보다 그때 일했던 사람들의 마음, 그들의 심정을 아이들에게 가르치고 싶다’고 했습니다. 즉 인간적인 측면에서 접근을 하고 싶다는 이야기인데, 저 역시 처음부터 “강제징용”이라는 역사를 내세우기보다 이정호라는 한 인간의 사랑과 정의라는 측면에서 단바망간기념관을 접근하다보면 결국 자연스레, 그리고 바로, 강제징용이라는 역사적 사실과 만나게 될 것이고, 그럴 때 비로소 자연스럽고 부드럽게, 강제징용의 역사를 받아들이게 될 것이라는 생각 때문입니다. 이러한 접근으로 일본과 만나고 싶습니다.


일본의 불의에 대한 저항, 역사 정의에 대한 신념
1986년 박물관을 만들겠다는 결심을 한 때는 그가 진폐증으로 앓던 시기입니다. 86년이면 45년으로부터 40여년이 지난 시기입니다.
식민지 시기와는 다른 40년이란 또 다른 하나의 일본사회를 살아온 것인데, 일본은 변한 것이 없었습니다. 일본은 가해의 역사를 열심히 지우려 했고, 숨기려 했고 또 왜곡을 했습니다. 그리고 재일조선인들에 대한 차별이 변함없이 지속됩니다.
바로 이 일본의 역사왜곡과 재일조선인에 대한 차별이 결정적으로 이 기념관을 만들겠다는 집념을 만들어 놓았을 것입니다. ‘이 못된 놈들, 내가 가만있지 않겠다.’는 생각을 만들어 놓은 듯합니다. 즉 망간기념관의 배경에는 반성을 하지 않는 일본사회에 대한 저항, 더 큰 관점에서 말하면 바른 역사를 남겨야 한다는 정의감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또 하나의 배경으로 재인조선인의 역사가 작용합니다.
1945년 이후 일정기간의 혼란시기에 재일조선인들은 후에 총련이 되는 조련이라는 단체를 만듭니다. 이정호씨도 이 조련 활동에 적극 참여하는데, 이것이 그를 개인적 범주의 인간에서 사회적 문제에 관심을 지닌 인간으로 바꿔 놓았을 겁니다. 이 역시 단바망간기념관의 동기가 되었을 것 같습니다.


재건추진위원회의 활동
얼마전 한국에서도 단바망간기념관재건추진위원회를 만들었습니다. 161명의 추진위원과 6개의 단체(흥사단,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동북아평화연대, 민족문제연구소, 부산해외교육문화동포교육네트워크, 지구촌동포연대)와 세 분의 국회의원(남경필, 강창일, 박선영)dm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모금운동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1. 폐관된 곳을 다시 고쳐 재개관하기 위한 보수비용 1100만엔의 모금과
2. 재개관된 이후, 월500만원의 운영적자를 메우기 위한  모금입니다.  

현재 1100만엔중 일본의 재건위원회가 450만엔 정도를 모았고, 윤도현 밴드의 자선공연으로 500만엔, 한국측 재건위원회에서 1000만원(100만엔 정도)를 모았습니다.
전체목표에서는 조금 부족하지만 재개관은 가능하게 된 셈입니다.

한국측 재건위가 할 중요한 일은 운영비 적자분을 모금하는 일입니다.
월 500만원을 매달 지원할 목표를 세웠습니다. 기업 후원이 아닌 매월 5천원을 후원해주는 사람을 천명을 모으는 방식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런 뜻에 동감하고, 마음으로부터 동참할 사람 천명을 모을 생각입니다.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봅니다.

이를 위해 161명의 발기인과 실행위원 그리고 6개 단체가 합심해서 1년간을 지원해 줄 사람 천명을 모을 것입니다. 이 모금은 일본정부나 지자체가 단바망간기념관의 가치를 인정하고, 즉 강제연행의 역사를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운영비를 정식으로 지원할 때까지 해 나갈 생각입니다. 10년 아니 그이상이 걸릴 지라도.

단바망간기념관을 만든 이정호 씨의 정신과 집념을 생각한다면, 우리사회에서 소액후원자 1000명을 모으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봅니다. 힘 있는 사람들의 도움보다는 우리 주변의 평범한 이웃들(광부들, 진폐증에 걸린 이들, 노숙인 등)과 함께 할 것이며, 종교단체와 대학총학생회 등 범국민적으로 모든 단체들을 찾아가서 설득할 생각입니다.
그리고 매월, 신문에 광고를 내어 우리사회에 단바기념관과 함께하는 분들이 있음을 알리고  또 광고지면을 통해 모금운동의 진행 사항을 홍보할 생각입니다.

이는 단순한 모금운동만이 아니라, 이정호 씨의 뜻과 정신에 동의하며 역사를 내가 지키겠다는 신념을 가진 이들을 우리사회에서 찾는 일입니다. 이들의 뜻을 모을 때 비로소 일본정부와 적극적이지 않은 한국정부를 압박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한 단계 성숙한 우리사회를 꿈꾸며
단바망간기념관이 지닌 의미는 일본과 한국이 다릅니다. 단바망간기념관은 일본이 저지른 가해의 역사를 일본인들에게 생생하게 증언하는 장소입니다. 일본인들은 자신들이 태평양전쟁의 피해자로 알고 있지, 수없이 많은 학살 등 가해자로서의 이미지가 거의 없습니다. 히로시마 원폭피해자라는 이미지가 강할 뿐입니다. 이걸 수정하는 유일한 역사교육장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를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단바기념관을 통해 우리사회가 알아야 할 것은 재일조선인의 삶과 역사입니다. 우리사회에 너무도 극심하게 결핍되어 있는 재일동포, 재외동포에 대한 인식, 이것을 한 단계 높여, 나만이 잘났다는 우리 대한민국의 인식을 한단계 높였으면 좋겠다는 것이 어쩌면 가장 큰 바람일지 모릅니다. 좀 따뜻하고 성숙한 사회.

[정리 : 이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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