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 사태와 침묵의 커넥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역사 그리고 거짓과 진실


2008년 한 해가 끝나가는 시점. 예수가 탄생한 크리스마스를 전후로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를 침공했다. 예수가 탄생한 이스라엘에서 예수의 탄생 시점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신을 통해 모든 사람들을 사랑하고 우상을 숭배하고 권력 있는 자들에 맞서 가난한 사람들을 대변했던 예수의 가르침이 있던 곳 현재의 이스라엘 땅. 2천 년이 지났다. 그리고 1947년 시온주의자들과 열강들의 이익에 따라 팔레스타인 인들이 쫓겨난 이후 60년의 세월이 흘렀다. 변하지 않은 건 이스라엘의 뻔뻔한 거짓말과 팔레스타인 인들의 고통이다.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점령은 중동에서 항상 커다란 소용돌이를 몰고왔다. 이번 사태도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에 대한 일방적인 폭력과 학살로 끝을 맺었다. 7000여명의 사상자를 내고 가자 지구를 대표하는 합법적인 하마스는 테러단체로 규정되며 팔레스타인의 자치권은 보장받지 못하고 주권은 상실되었다.

이스라엘이 국제법을 마음대로 어겨가면서 국제 사회의 비호 아래 이러한 만행을 저지를 수 있는지에 대해 의심을 품어본다. 이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역사를 자세하게 알 필요가 있고 현재 진행되고 있는 일련의 사태에 대해 정확하게 꽤 뚫어 볼 필요가 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거짓과 진실에 대해서. 이번 문화를 생각하는 사람들의 29차 나눔 마당은 이러한 진실을 꽤 뚫어보게 하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해 꾸준히 문제제기를 하고 있는 <경계를 넘어>와 시민 활동을 하고 있는 <팔레스타인 평화 연대>가 함께 준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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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역사
시온주의자에 의한 이스라엘 유대 국가의 설립은 제국주의의 산물이다. 오스만트루크 제국의 붕괴 후 영국과 프랑스는 팔레스타인 지역을 지배했다. 영국은 1차 세계 대전에서 메카의 태수 후세인에게 영국을 지원을 조건으로 아랍 국가의 설립을 약속했다. 그러나 영국은 약속을 어기고 1917년 벨푸어 선언을 통해서 팔레스타인 지역에 유대 국가 설립을 밝힌다. 시오니스트들은 영국 정부의 승인 아래 팔레스타인 지역에 점령 촌을 건설하고 아랍인들을 공격하며 테러를 일삼는다. 2차 세계 대전에서 독일의 나치에 의해 벌어진 홀로코스트는 유대 국가 건설에 합리적인 정당성을 부여한다. 이는 유럽이 유대인의 학살과 차별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는 조처였다. 극단적인 시오니스트들은 유대 국가인 이스라엘을 건설하고 아랍계 팔레스타인을 핍박하고 전쟁을 통해 이스라엘 영토를 늘리게 된다. 4차 중동 전쟁을 통해서 유럽 국가들의 지원을 받고 미국의 개입까지 이끌어 낸다. 미국은 이스라엘에 대해 미국의 전략적 자산이라는 인식으로 적극적으로 지원을 해왔다. 적극적인 유대인들의 이주 정책으로 팔레스타인 인들은 난민이 되거나 일방적 폭력과 가난으로 생활한다. 이스라엘은 가자, 서안의 자치 지구 정책으로 팔레스타인을 통제한다. 이는 악명 높은 남아프리카의 아파헤르트 정책을 표본으로 삼았다. 1987년 팔레스타인은 1차 인티파타(저항운동)과 2차 인티파타(알 아크사)로 저항을 벌였지만 이스라엘 군대에 의해 진압되었고 많은 사상자를 내었다. 국제 사회는 1978년 캠프 데이비드 협정과 1993년 오슬로 협정을 이끌어 내었지만 이스라엘에게 정당성을 부여하는 허울 좋은 협정에 불과했다.

이스라엘은 서안지구의 팔레스타인 인구를 분리하기 위해 2002년 6월부터 높이 8m에 이르는 콘크리트 장벽을 건설하기 시작했다. 장벽이 설치하고 검문소를 통해 외부로 나갈 수 있게 했다. 이러한 통제는 팔레스타인들의 이동을 극도로 제한하여 경제적 문제를 야기했다. 2차 세계 대전 시 독일의 나치가 유대인들을 감금하는 시설인 게토를 건설하여 유대인들을 가두었던 역사의 아이러니를 재현하는 것이었다. 이스라엘의 점령 과정에서 쫓겨난 난민들은 720만 명 이상으로 주변의 시리나, 이집트, 요르단, 레바논의 난민 촌에 살고 있다. 이들은 고향에 돌아가지도 못하고 재산권 마저 불평등한 법으로 인해 박탈 당했다.

이슬람 정당 하마스의 등장과 이스라엘의 2008년 12월 침공
1993 년 오슬로 협정에서 1996년 1차 자치정부 의회선거를 거부한 팔레스타인은 10년 만에 열린 2006년 자치정부 의회 선거를 실시한다. 이스라엘의 방해 공작에도 77.7%의 투표율을 기록한다. 하마스는 가자에서 15석, 서안에서 30석을 얻어 지역구 66석 중 45석을 차지하며 제 1당이 되었다. 하마스는 병원 설립, 노인에 대한 무료진료, 학교 건립 등의 정책으로 팔레스타인 민중의 지지를 받았다. 이스라엘은 하마스 정당이 집권하자 미국, 유럽연합과 함께 하마스를 고립하는 압박 정책을 실시한다. 한편 집권당이었던 파타당은 이스라엘과 미국의 지원을 받으며 애매한 정치적 입장을 취했다. 또한 파타당은 하마스와의 연립 정부를 일방적으로 해체하면서 전쟁을 선포한다. 팔레스타인의 분열이 시작된 것이다. 이스라엘은 파타와는 대화하였지만 하마스는 강경한 압박으로 이중 정책을 취했다. 2008년까지 이스라엘은 하마스를 테러 조직으로 규정하고 끊임없이 가자 지구를 경제 봉쇄하고 공습을 한다. 가자 지구는 국제 기구와 민간 단체의 긴급 구호품과 식량으로 연명하게 된다. 2008년 12월 이스라엘은 하마스의 로켓포 공격을 빌미 삼아 가자 지구를 침공한다. 현 집권당은 2009년 2월 총선을 앞두고 우파와 극우 정당에 위협을 느끼고 가자 지구 공습을 통해 지지율을 높이기 위한 정치적 의도가 있었다. 미국은 이스라엘에 군사 원조를 해왔으며 국제 사회에서 강력한 권한과 함께 이스라엘을 지지해왔다.

국제 사회의 침묵과 방조
유엔은 안정보장 이사회를 통해 휴전을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하지만 미국의 반대와 여러 국가들의 기권과 포기로 이스라엘을 제지하지 못한다. 특히 2009년 1월 12일에 있었던 유엔 인권 이사회에서 한국은 기권을 했다. 결국 찬성 33표로 인권 침해에 대한 결의안이 채택되지만 효력 없는 형식적인 결의안이었다. 국제 사회는 이스라엘을 비난했지만 특유의 양비론으로 일관한다. “하마스가 자초한 것, 지상전은 이스라엘의 자위 권 문제”(조지 부시 대통령), “하마스는 테러집단이고, 이웃 나라가 우리나라를 그렇게 공격하면 우리도 이스라엘처럼 했을 것이다.”(미치 매코웰, 미국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 “이번 일은 하마스가 자초한 것”(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고든 브라운 영국 총리). 서방 언론들 또한 이스라엘의 침공에 의한 ‘민간 피래, 인권 침해’만을 언급하면서 ‘하마스의 로켓포 공격’을 비난하며 위험 테러 단체로 몰아갔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거짓과 진실
첫째, 하마스는 ‘이슬람 저항운동’을 뜻하는 정치조직이다. 2006년 총선에서 높은 지지율로 132석 중 74석을 차지한 제 1당이다. ‘하마스는 테러집단’ 이라고 몰아갔던 이스라엘과 서방의 정치인들 그리고 언론들의 인식을 잘못 되었다. 하마스는 ‘정당’이지 ‘테러집단’, ‘테러단체’, ‘테러조직’이 아니다.
둘째, 정전 협정을 일방적으로 깬 것은 이스라엘이다. 이스라엘은 중동에서 영토 확장과 팔레스타인을 고립 시키기 위해 4차 중동전쟁을 터트렸다. 그리고 끊임없는 인권 유린과 가혹한 봉쇄 조치로 일관했다. 어떠한 민족이라도 독립을 위해 투쟁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팔레스타인은 자신들의 영토를 되 찾고 자신들의 권리를 찾기 위해 투쟁했다. 이를 이스라엘은 테러로 규정하며 하마스가 먼저 로켓포 공격을 했다고 침공에 대한 합리화를 시킨다. 2008년 1~11월까지 팔레스타인은 432명, 이스라엘인은 29명이 사망했다.
셋째, 이스라엘 군사력과 하마스의 군사력은 엄청난 차이가 있다. 이를 마치 동일하게 전쟁하는 집단으로 여론을 몰아가는 건 잘못이다. 이스라엘은 GDP 대비 세계 7위, 상비군 15만명, 예비군 50만 명, 무기 수출국 12위, 무기 수입국 6위의 군사력을 지니고 있다. 또한 미국은 매년 20억 달러 이상의 무기를 무상원조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비공식 핵무기 보유국으로 미국의 비호 아래 핵 사찰 또한 면제 받고 있다. 반면 하마스의 군사력은 병력 수천 명, 소총과 대전차 미사일, 카츄사 로켓, 카심 미사일을 보유하고 있다. 12월 공습 후 22일 동안 팔레스타인 1,305명(어린이 417명)이 사망하고 5,450명이 부상했다. 이스라엘 사망자는 13명이고 이중 5명은 이스라엘의 오 폭으로 사망했다. 수치로 비교해도 군사력은 비교가 안 된다. 단순한 전쟁이라기 보다 이스라엘 쪽의 일방적인 학살의 표현이 올바르다.
넷째, 이스라엘은 국제법을 일방적으로 준수하지 않고 있다. 유엔 안보리와 유엔 총회에서 채택된 결의안을 계속 무시해 왔다. 또한 국제적으로 금지된 유엔 및 각종 구호 시설을 공격해왔다. 이번 공습과 침공에서도 1월 5일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 유엔학교 폭격, 6일 가자 지구 유엔학교 2곳과 유엔 의료 시설 폭격, 15일 팔레스타인 난민기구(UNRWA) 본부 건물을 폭격하여 많은 사상자를 발생 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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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째, 이스라엘은 중동에서 유일한 민주주의 국가가 아니다. 이스라엘은 이슬람 종교가 정치와 연계된 중동 지역에서 자신들 만이 합법적인 민주주의 국가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1967년 이후 가자 지구와 서안지구에서 약 50만 명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구금했다. 각종 고문이 합법화 되어 있고 재판 없이 6개월 이내에 구금 할 수 있는 인권유린이 자행돼왔다. 선거의 자유에서도 하마스, 헤즈볼라 등과 연계되었다는 이유로 아랍 주민들을 대변하는 정당의 출마를 무산시키고 해상을 요청하기도 했다. 유대인들에게는 민주적일지 모르겠으나 팔레스타인 인들에게는 무참히 인권을 짓 밟고 전쟁의 대상으로 삼는 비민주적 형태를 구사하며 민주주의를 왜곡 시키고 있다.

세계의 침묵과 방조
난 60년 동안 왜 이런 비극이 끝없이 반복되고, 세계는 이토록 침묵하는가?
2 차 세계 대전 유대인들은 독일의 나치에 의해 홀로코스트를 당한 아픔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 이후 세계 인권 선언을 발표하는 계기가 되었다. 유럽 열강들의 전쟁의 소용돌이에서 집단 이주로 게토에 강제 수용되고 강제 노동을 했다. 결국 나치의 홀로코스트로 많은 유대인들이 비참하게 사망했다. 지금 유대인들의 삶은 어떠한가? 이들은 안정적인 유대인 국가인 이스라엘을 건립하고 자치촌을 형성하며 살고 있다. 그러나 역사의 아이러니는 순환 되는 것일까? 이들이 핍박을 그대로 팔레스타인 인들에게 전가 시키고 있는 만행을 저지르고 있다. 폭력은 전이되고, 게토를 위시한 장벽은 완성되어가고 있다. 여기에 세계 국가 기구인 유엔과 국가들의 침묵과 방조는 이를 가속화 시키고 있다. 주변 국가들은 자신들의 이익만을 생각할 뿐 전혀 팔레스타인 인들의 인권에 대해선 관심이 없는 듯하다. 홀로코스트의 시대적 배경과 너무도 흡사해서 전율이 느껴진다. 폭력과 살인 그리고 전쟁의 역사의 전이에 대해 전세계 시민들이 깊숙이 고민해야 한다. 그래야만 또 다른 역사적 비극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정리 : 고우주(문화를생각하는사람들 교육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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