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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차 문화나눔마당 강연요약]
“지도위에서 지워진 이 팔레스타인에 물들다”
일시 ; 2011년 4월 8일(금)
장소 : 레드북스
이야기 손님 : 안영민(“지도 위에서 지워진 이름, 팔레스타인에 물들다” 저자)
2003년부터 팔레스타인평화연대를 단체를 만들어서 몇몇 분들과 활동을 하다가 지금은 충전을 위해 잠시 쉬고 있습니다. 제가 팔레스타인에서 지내면서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을 오늘 이 자리에서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방사능 비 보면서 드는 생각
어제 아침 창문밖에서 까치를 봤습니다. 일본의 지진과 원전사고로 방사능비로 불안한 요즘.
동네 초등학교 어린이들은 우산이라도 쓰면서 학교를 다니는데 ‘과연 저 까치는 방사능 비를 알고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나라도 아닌 바다건너 일본에서 난 사고가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는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우리하고 관계 없는 일본의 일이지만 결국 우리에게 더 나아가서 인간을 포함한 자연에게 까지 영향을 미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팔레스타인도 마찬가지일 것 같습니다, 많은 분들이 팔레스타인하고 우리하고 무슨 관계가 의문이 있으실 것입니다. 어떤 분들에게는 팔레스타인의 남의 일일 것입니다. 지도를 놓고 보면 중동은 서아시아 지역입니다. 팔레스타인은 중동지역입니다. 우리가 흔히 보는 보통지도에는 이스라엘이라고 표시된 곳에 있습니다. 여러분은 팔레스타인하면 어떤 느낌이나 생각이 드십니까? 유랑민족, 전사, 돌 던지는 청소년, 핍박받는 사람들, 이스라엘, 슬픔, 분쟁지역, 고통, 눈물, 아픔, 상처, 테러 등.
우리와 비슷한 팔레스타인의 일상
우리에게 팔레스타인은 그런 느낌으로 다가옵니다. 하지만 팔레스타인도 사람사는 지역이고 그곳 하늘에도 저녁노을은 집니다. 그들도 일상이 있고 서로 인사를 합니다. 한국사람은 서로 “안녕하세요” 하지만 “살렘 알레이쿰”이라고 먼저 인사를 하면 “알레이쿰 살람”이로고 답을 합니다. 팔레스타인은 아랍권입니다. 아랍권은 이라크부터 북부아프리카 까지 상당히 방대합니다. 그래서 아랍권의 문화도 단일하지는 않습니다. 아랍어도 TV나 꾸란에서는 표준 아랍어를 쓰지만 지역 따라 서로 다릅니다. 또 아랍하면 “덥다”는 느낌을 가지는데 겨울에는 불을 피우고 두꺼운 옷을 입어야 할 만큼 춥고 북부지역으로 가면 눈도 옵니다. 늘 낙타만 타고 다니는 것도 아닙니다.
재미있는 풍습도 있습니다. 어느 결혼식장을 가보니 하객들이 결혼 축의금을 신랑의 옷에 옷핀으로 꽃아 주고 있었습니다. 대학을 가 보니 우리의 대학과 같았습니다. 여성들이 히잡을 두루고 있는 정도가 달랐을 뿐입니다.
무슬림들은 하느님 아래 모두가 평등하다는 생각에 다들 어깨를 맞대고 줄을 서서 메카를 향해 절을 합니다. 우리나라에는 이태원에 이슬람성원이 있습니다. 식습관도 우리와 비슷해서 밥(쌀), 빵, 생선, 고기 등을 먹습니다. 그러나 무슬림이기에 돼지고기는 먹지 않습니다.
그들도 아프면 울고 기쁘면 춤도 추고 사랑도 하고 결혼도 하는 우리의 모습과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인간이기에 같은 생각과 같은 행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다만 우리와 다른 정치환경에 놓여 있었을 뿐이었습니다.
전쟁과 분쟁의 땅 팔레스타인
1948년에 아시아의 동쪽 끝에서는 대한민국이 그리고 서쪽 끝에서는 이스라엘이 건국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두 나라의 건국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대한민국이 일본의 식민지를 벗어나면서 국가를 건설했다면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을 식민지로 만들면서 국가를 건설했습니다.
유럽인들의 눈에 유대인들은 (특히, 문학작품 등을 보면) 수전노, 고리대금업자였습니다. 그리고 억압받고 학대받는 민족이었습니다.(드레퓌스 사건, 19세기말 러시아 유대인 학살 등) 이를 해결하기 위한 유대인들의 운동 중에 시오니즘(Zionism) 운동 이 있었습니다. “시온”은 예루살렘, 종교적 의민에서 심판의 날에 예수님께서 구원해 주실 그곳입니다. 다른 유대인 운동이 유럽에서 일어난 문제를 그 지역에서 해결하자는 것이었다면 시오니즘은 팔레스타인 지역데 유대인 국가를 만들자는 것이었습니다. 유럽의 탄압이 심해질수록 시오니즘이 점점 더 탄력을 받게 됩니다. 어차피 유럽에서는 안되니 저 황무지인 팔레스타인으로 가자는 것이었습니다.
19세기초 1차 세계대전에서 아랍민족이 오스만제국에 대항하면 팔레스타인에 아랍민족국가를 세워준겠다는 약속을 영국이 합니다. 1916년에는 영국과 프랑스가 사이크스-피코협정을 맺습니다. 1917년에는 영국이 유대인들의 지원을 받기 위해 벨푸어선언을 합니다.
즉, 서로 상치되는 동시에 다 실현될 수 없는 약속을 한 것입니다. 그 결과는 영국이 팔레스타인 지역을 직접 지배하는 것이었습니다. 영국은 1920년대와 30년대 시오니즘운동을 지원합니다. 그러면서 유럽지역의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으로 대규모로 이주를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지역은 사람이 살고 있지 않은 땅이 아니라 이미 아랍인들이 살고 있는 땅이었다는 것입니다.
아랍인들과 유대인들의 분란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이 이주해 와서 만들겠다는 국가는 “유대인도 사는 국가”가 아닌 “유대인만의 국가”를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랍인들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이야기였습니다. 영국과 미국 그리고 전 세계 유대인들의 재정적 후원을 받는 이 시오니즘 운동은 국가건설을 본격화하며 총과 칼로 원주민들을 내쫓기 시작하더니(1947년) 1948년 5월14일 이스라엘 건국을 선포합니다. 그리고 1948년 5월 15일부터 주변의 아랍국가와 전쟁을 시작합니다. 이 전쟁에서 이스라엘이 이겨서 팔레스타인지역의 78%를 차지합니다. 나머지 22% 중 서안지구는 요르단이 가자지구는 이집트가 차지합니다.
국제전쟁사에서 유명한 6일전쟁으로 시리아의 골란고원, 이집트의 시나이반도 그리고 팔레스타인의 나머지 가자지구와 서안지구 까지 이스라엘이 차지합니다.(시나이 반도는 나중에 이집트에 반환합니다). 이로 인해 팔레스타인은 이스라엘의 식민지가 됩니다. 하지만 팔레스타인은 독립하려는 의지를 보입니다. 1987년 인티파타(아랍어로 각성 봉기, 민중항쟁)가 시작됩니다. 이는 전 세계에서 큰 반향을 불러왔고 결국 이스라엘이 타협안을 냅니다. 이 결과인 오슬로 협정으로 팔레스타인도 형식적인 자유를 얻어내지만 팔레스타인에 있어 실질적인 면(경제, 자유, 이동)은 악화일로를 걷습니다. 그래서 2000년 9월 2차 인티파다가 시작됩니다. 기대감은 분노로 바뀐 것입니다. 시위에 참여 하다 결국 총에 맞아 숨진 어린 소년 무하마드 알 두라의 모습이 외신을 타면서 전 세계는 다시 팔레스타인을 떠올립니다. 대략적인 통계에 따르면 2009년 9월부터 작년 10월 까지 6000여명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팔레스타인 인구 400만명 추산) 그중 18세미만 청소년들의 비율이 25%입니다
지금 팔레스타인이 처한 상황
이스라엘 시민권을 가진 사람이 20%는 아랍인이고 나머지는 유대인들입니다. 그리고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이스라엘, 서안지구 그리고 가자지구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서안지구와 가자지구에 사는 사람들은 서로 오갈 수 없습니다. 저는 외국인이어서 오가는 것이 가능했습니다.
서안지구의 라말라(Ramallah)에서 예루살렘으로 갈 수 있는 길은 하나 밖에 없습니다. 이스라엘인이 팔레스타인은 그 하나의 길로만 다니게 해 놓은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길에 검문소를 세워놓았습니다. 라말라에서 예루살렘으로 가려면 검문소를 통과해야 하는데 거기에는 상당히 좁은 회전문이 있습니다. 그 회전문 위에는 빨간등과 파란등이 있는데 빨간등은 켜있는 시간은 이스라엘 사람들의 마음에 따라 10분, 1시간, 며칠입니다. 그 빨간등이 켜 있을때는 사람뿐 아니라 모든 물자들이 이동을 못합니다. 이는 팔레스타인을 통제하기 위한 수단입니다. 파란불이 켜지면 통과가 가능한데 공항의 짐검색대와 같은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그런데 그런 검색 회전문이 몇개가 있어 그것을 다 통과해야 합니다. 이런 고정된 검문소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군인들이 지프차로 지나다가 아무도로에나 세우고 검문을 하는 수도 있습니다. 검문을 시작하면 도로 옆에 차가 일렬로 서서 자기 순서를 기다려야 합니다. 간단히 끝나는 경우도 있지만 몇시간씩 서서 기다려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리고 초록색 신분증을 제시해야 합니다(이스라엘인의 신분증은 파란색입니다) 수배자를 잡기 위해서 그리고 팔레스타인을 귀찮게 하기 위해 그러는 것입니다. 이러하니 팔레스타인이 약속시간을 지킨다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입니다.
헤브론의 시장에는 한가운데 큼지막한 돌이 박혀있기도 했습니다. 차가 지나가지 못하게 이스라엘 군인들이 옮겨놓은 것입니다. 1967년 이스라엘이 점령한 이 도시의 건물 2층에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주를 합니다. 2층의 이스라엘인들은 아랍인들이 지나가면 오물, 돌 등을 던지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하늘에 철조망을 쳐야 했습니다. 그 옆 불과 100미터 남짓인 아브라함 모스크로 가려면 세 개의 검문소를 지나야 하고 아브라함 모스크에 도착하면 기도소 안에 CCTV가 몇 개 설치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도시ㅅ곳곳에 카메라가 설치되어 팔레스타인이 무엇을 하는지 다 보고 있습니다.
팔레스타인에 관심을 가지고 활동을 한지 7~8년 정도됩니다. 그동안 여러 가지 경험을 했지만 가장 가슴이 아팠던 것은 칼킬리아 마을 전체를 높이 8~9미터의 장벽으로 둘러 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군데군데 초소를 두어 마을을 감시하는 것이었습니다. 마을전체를 하나의 감옥으로 만든 것이었습니다. 6만 명 정도 사는 마을을 이렇게 막아놓고 문 하나만을 열어 군인이 지키고 있었습니다. 정착촌이라는 말을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정착한다 하면 빈 황무지에 머무른다는 느낌이 들지 않으시는지요. 백인들이 정착했던 곳이 실은 인디언들이 살고 있던 곳이었던 것처럼 실은 이곳도 팔레스타인이 살고 있던 땅 아닙니까? 그런데 이곳을 빼앗고 팔레스타인을 내쫓고 마을을 이루어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곳을 점령촌이라고 부릅니다. 이렇게 마을을 빼앗고 이주한 점령촌의 이스라엘인은 철조망을 쳤고 팔레스타인이 경작하는 올리브농장에 오폐수를 흘려보냈습니다. 이 오폐수는 팔레스타인의 삶은 터전인 농지로 지하수로 흘러들어가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이스라엘의 쓰레기처리업자들은 이스라엘의 쓰레기들을 제대로 처리하지 않고 팔레스타인 마을에 쏟아 붓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의 군인들인 한밤중에 팔레스타인 가정에 들어와 가족들을 한방에 몰아놓는 등의 일을 저지르기도 합니다. 이렇게 살수 없을 정도로 괴롭힘을 당하면서도 팔레스타인이 떠날 수 없는 것은 이곳이 조상대대로 살아온 고향이기 때문입니다.
예루살렘은 역사적으로 오래된 도시로 유대교, 이슬람교, 기독교의 성지로 전 세계의 수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도시이며 많은 팔레스타인이 살고 있는 곳입니다. 어느날 예루살렘에 있는데 어디선가 펑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리고 군인들과 경찰들이 뛰어다니기 시작했습니다.(예루살렘에는 늘 총을 군인들이 넘쳐나고 있습니다.) 수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지역인데도 최루탄을 던진 것이었습니다. 학교가 끝나 학생들이 하교 하는 시간이었는데 이 일이 터지자 남학생들이 어디론가 도망치기 시작했습니다. 미처 도망치지 못해 군인들에게 잡히면 잡혀가서 두들겨 맞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 여느 노점상처럼 동네할머니들이 텃밭에서 키운 야채들을 팔고 있는 야채를 군인들이 지나가면서 아무 이유 없이 발로 퍽퍽 차서 못쓰게 만드는 광경도 목격했습니다. 어느 외국 언론의 기자는 45일안에 이스라엘을 떠나라는 통지서를 받기도 했습니다. 어느날 새벽 살고있던 집에서 이스라엘 군인들에 의해 느닷없이 쫓겨나 노숙 시위를 벌이는 할아버지를 만나기도 했습니다.
지금까지는 서안지구 상황이었고 지금부터는 가자지구에 대해서 말씀 드리겠습니다. 오랜 동안 이스라엘은 가자지구를 봉쇄하고 있었습니다. 국제공항 활주로를 뒤엎었고 바다에는 군함을 띄어 놓았습니다. 육해공 어디로도 나갈 곳이 없게 해 놓았습니다. 그런데 이 가자지구는 팔레스타인 해방운동의 중요한 지점입니다. 그래서 식량, 전기, 석유, 의약품의 보급통제 등을 통한 봉쇄와 압박의 정도가 점점 더 심해졌습니다. 이것은 시끄럽게 굴지 말라는 저항하지 말라는 이스라엘의 메시지입니다.
지금 가자지구에는 밖으로 연결되는 땅굴이 천 여 개 정도 있다고 알려져있습니다. 이스라엘은 땅굴이 있을 만한 곳을 공격하고 있습니다. 2008년 12월 27일부터 22일 동안 이스라엘은 가자지구에 대규모의 폭격을 감행합니다. 그로인해 가자지구 150만명 사람들중 1400명이 사망합니다. 폭격이 진행되자 가자지구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유엔이 운영하는 학교로 몰려들었습니다. UN이 운영을 하니 안전하지 않겠느냐는 판단에서였습니다. 그런데 그곳마저 폭격을 했습니다.
그렇다면 팔레스타인사람들은 가만히 있기만 할까요? 어느 시골에서 영어선생님을 만났습니다. 그 영어선생님은 학생들의 배워야 한다는 것, 의식이 깨어나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게셨습니다. 그리고 농민여성들은 조직을 만들어서 집회에 나가고 수공예품을 만들어 팔고 있었습니다. 수감자들을 지원하기 위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었고 전쟁으로 피폐해진 아이들을 위한 심리프로그램도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또 소년들 청년들은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과 같은 저항을 하고 있었습니다.
전 세계 많은 사람들이 팔레스타인을 지원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습니다. 세계인들의 모금으로 국제구호선을 띄웠는데 이스라엘은 터키에서 출발해 공해상에 있던 구호선 마저 공격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 일 이후에도 계속 평화의 배는 띄어지고 있습니다. 또 이스라엘로 진출하려는 일본기업을 상대로한 캠페인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청년평화주의자 안영민이 하고 싶은 말
제가 쓴 팔레스타인 책을 보시고 어느 특수학교 선생님이 그 학급 학생들의 문집을 보내오셨습니다. 거기 어느 학생이 쓴 글을 소개해 드립니다.
“성철이가 아파서 학교에 안왔다. 성철이가 안와서 기분이 안좋다. 나았으면 좋겠다.”
그 글을 읽고 마음이 짠했습니다. 다른 어떤 논리가 아니라 친구가 아파서 빨리 나았으면 좋겠다는 이 마음이 바로 인간이 지녀야 할 마음이 아닌가 싶습니다. 최근 블랙스완이라는 영화를 감명깊게 봤습니다. 순결한 백조의 연기와 나쁜 흑조의 연기를 동시에 해야하는 발레리나 이야기였는데 사람의 마음이 이런 것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100% 선한 사람 없고 그 반대의 경우 없듯이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고통받는 이야기 들으면 도와야지 싶다가도 그런 얘기 계속 들으면 마음 불편하니까 외면하고 싶은 것이 아닐까. 우리 백조도 살고 흑조도 살고 선과 악이 다 있지만 삶의 매 순간마다 그것을 선택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말라 죽은 지 알았던 화초가 물을 주고 정성을 주면 다시 살아날 수 있듯이 우리의 마음도 그러하리라 생각됩니다. 사람들이 서로 아끼고 웃으면서 살아갈 수 있는 그런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조그마한 무언가라도 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세상의 나무들
정현종
세상의 나무들은
무슨 일을 하지?
그걸 바라보기 좋아하는 사람,
허구한 날 봐도 나날이 좋아
가슴이 고만 푸르게 푸르게 두근거리는
그런 사람 땅에 뿌리내려 마지않게 하고
몸에 온몸에 수액 오르게 하고
하늘로 높은 데로 오르게 하고
둥글고 둥글어 탄력의 샘!
하늘에도 땅에도 우리들 가슴에도
들리지 나무들아 날이면 날마다
첫사랑 두근두근 팽창하는 기운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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